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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아내의 42억

계절감자 · 100화

이혼 당일, 남편이 몰랐던 지분과 채권을 꺼낸 한서율의 현대 복수극.

# 제 1화. 그 사람의 손이 떨렸다 --- 7년. 나는 7년을 기다렸다. 무언가를 바라서가 아니다. 준비가 끝날 때까지. 그것뿐이었다. --- 이혼 서류에 서명하는 날 아침,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여섯 시 이십 분.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봤다. 11월 서울은 아직 어두웠다. 나는 어둠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오늘 이후 이 집에서 이 창문 앞에 서는 일은 없을 거라고.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픔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아무것도 없을 때, 사람은 그게 슬픔보다 더 나쁜 상태라는 걸 모른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 구민준은 여덟 시에 내려왔다. 양복 차림이었다. 오늘도 출근할 것처럼. 오늘이 그냥 평범한 날인 것처럼. 그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다가 나를 봤다. "일찍 일어났네."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났어요." "……그래?" 7년 동안 같은 집에 살았다. 그가 내 기상 시간을 몰랐다는 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지 않았다. 나는 커피잔을 싱크대에 내려놨다. "서류 가져왔어요?" "변호사 사무소에서 보기로 했잖아." "알아요. 거기서 봐요." 그게 우리의 마지막 아침 대화였다. --- 법무법인 로비는 오전 햇살이 가득했다. 나는 구민준보다 십 분 먼저 도착해 소파에 앉았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나는 변호사를 세 번 바꿨다. 처음 두 명은 "합의를 권장드립니다"라고 했다. 세 번째 변호사, 김은지 변호사는 내 말을 끝까지 들은 뒤에 물었다. "얼마나 준비해두셨어요?" "7년치요." 그녀는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말했다. "시작하죠." 오늘 그녀는 내 왼쪽에 앉아 있다. 짙은 네이비 수트. 서류 봉투 세 개. 구민준이 들어왔다. 그의 변호사가 옆에 있었다. 사십대 중반, 이름은 이재원. 구민준 아버지 쪽 법인 고문이었다.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구민준이 맞은편에 앉으며 나를 봤다. 나는 그의 넥타이를 봤다. 진한 버건디. 처음 보는 거였다. *최수진이 골라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생각을 접었다. --- 이재원 변호사가 봉투를 먼저 꺼냈다. "한서율 씨, 이 서류는 이혼 합의서와 함께 재산 분할 포기 확인서입니다. 서명해주시면" "잠깐요." 김은지 변호사가 말을 끊었다. 낮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저희 측도 서류가 있습니다. 먼저 이걸 확인해주시겠어요?" 봉투 하나가 테이블을 건넜다. 이재원 변호사가 열었다. 안을 들여다봤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이게……" "전환사채 조기상환 청구서입니다." 김은지 변호사가 답했다. "JM테크 시리즈A 라운드, 2017년 8월 31일 실행. 전환 조건 미행사 상태. 원금 25억, 약정 이자 포함 청구금액 42억 3천만 원. 상환기한은 오늘로부터 30일입니다." 이재원 변호사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구민준은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서율아." 내가 처음으로 구민준을 봤다. "이게 무슨" "JM테크 시드 투자자가 저예요." 나는 천천히 말했다. "결혼 전부터요." 구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리야, 그건 아버지가" "아버님은 2대 주주예요. 저는 1대예요. 민준씨가 모르셨던 거죠." 테이블 위에 두 번째 봉투가 올라왔다. "주주 명부 사본, 원계약서 사본, 금융거래 내역 7년치입니다." 나는 그 봉투를 바라보지 않았다. 7년 동안 그 서류들을 외울 만큼 들여다봤으니까. "재산 분할 포기 각서에는 서명 못 하겠어요. 대신 이혼 합의서엔 서명할게요." 내가 펜을 들었다. 구민준의 손이, 처음으로 떨렸다. --- 서명을 마치고 로비로 나왔다. 11월 햇살이 내 발등에 떨어졌다. 김은지 변호사가 나란히 섰다. "다음 단계는 제가 진행할게요. 서율씨는 입사 준비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서율씨.'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7년 만에.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일 잘하는 게 제일 좋은 복수거든요." 그녀가 먼저 걸어갔다. 나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 잘하는 게 제일 좋은 복수.* 나는 그 말을 가슴 안쪽 어딘가에 넣었다. 꺼내 쓸 날을 위해. --- 그 무렵, 구민준은 아직 협의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재원이 로비까지 나를 따라왔다. "구 대표님, 이거 단순하지 않습니다." "알아." "42억은 그냥 넘어가는 금액이 아니에요. 30일 안에 유동성 확보를" "알아요." 나는 로비 유리문 너머를 봤다. 서율이 햇살 속에 서 있었다. 검은 코트. 똑바른 등. 7년 동안 저 등을 봤다. 늘 저랬다. 항상 저 자리에 있었다.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내가 그랬지.* *그런데 왜.* *저 사람이 더 커 보이지.* 이재원이 다시 말했다. "아버님께 먼저 연락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알면 더 복잡해져." "하지만" "내가 처리할게요." 처리. 나는 그 단어를 뱉어놓고 멍해졌다. 서율이 뒤돌아 걸어가는 게 보였다. 택시를 잡는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를 향해 그냥 걷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지. 7년 동안 저 사람이 어디 가는지, 나는 한 번이라도 물어본 적이 있었나. *청구금액: 42억 3천만 원.* 숫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나는 도보로 이십 분을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걸었다. 시청 앞 광장을 지나 을지로 방향으로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7년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커리어. 이름. 판단력. 아니, 그것들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7년 동안 숨겨왔다. 냉장고 안쪽 제일 깊은 칸에 넣어두는 것처럼.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네." "한서율 씨 맞으시죠?" 남자 목소리였다. 낮고, 조금 건조한. "NJ캐피탈 나재한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미팅 가능하신가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번호를?" "김은지 변호사님한테 받았습니다. 허락하셨다고 하던데요." 그 사람이. 벌써. 나는 피식 웃었다. 거의 7년 만에 혼자, 아무도 없는 길 한가운데서. "월요일 몇 시요?" "오전 열 시. 편하시면 저희 쪽으로 오시고, 불편하시면 중간 지점 잡겠습니다." "NJ캐피탈 오피스 어디예요?" "광화문이요." "거기로 갈게요."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11월 바람이 차가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이 가벼웠다. 나는 코트 깃을 여미며 생각했다. *7년 동안 준비한 건, 복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였는지도.* 그리고 그날 밤, 구민준의 어머니에게 문자 한 통이 갔다. 수신자: 박정임.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어머니, JM테크 오늘 공시 확인하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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