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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내 인생 최악의 오답노트

문장수정 · 5화

늘 남의 답을 베껴 쓰던 친구가 전교 1등이 되던 날, 서윤은 자신이 틀린 게 아니라 틀린 사람 곁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마지막 시험에서 그녀는 오답노트를 찢는다.

# 잘 가, 내 인생 최악의 오답노트 ## 1화. 오답노트 첫 장 내 오답노트 첫 장에는 유나의 글씨가 있었다. `서윤아, 이 풀이 진짜 이해 잘 된다. 나 한 번만 빌려줘.` 그때 나는 그 문장이 칭찬인 줄 알았다. 내가 밤새 정리한 풀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좋았다. 친구가 내 노트를 보고 웃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빌려줬다. 처음엔 수학 한 권이었다. 다음엔 영어 변형 문제. 그다음엔 국어 비문학 구조도. 유나는 늘 “한 번만”이라고 말했다. 한 번은 이상하게 여러 번이 됐다. “너는 설명 진짜 잘한다. 선생님보다 나아.” 유나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또 노트를 꺼냈다. 친구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기분은 달았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쓸모 있어서 인정받는 기분. 중간고사가 끝난 뒤, 유나는 반에서 3등을 했다. 나는 7등이었다. “네 덕분이야.” 유나는 내 손을 잡고 웃었다. 그 말이 좋았다. 내 등수가 내려갔는데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잘됐으니까. 하지만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유나는 점점 내 앞에서 문제를 풀지 않았다. 대신 쉬는 시간마다 내 노트를 가져갔다. 사진을 찍고, 밑줄을 긋고, 가끔은 내 표현을 자기 말처럼 바꿔 적었다. “서윤아, 이거 네가 만든 방식 아니지? 인터넷에 있던 거지?” 어느 날 반 친구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정리한 거야.” “아, 그래? 유나가 자기 방식이라고 발표하던데.” 그날 처음으로 마음 한쪽이 쿡 찔렸다. 나는 유나에게 물었다. “내 풀이 발표했어?” 유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우리 같이 공부했잖아. 네 거 내 거 따지는 거 너무 야박하지 않아?” 야박하다. 그 말 하나에 나는 또 입을 다물었다. 친구 사이에 계산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오답노트에는 유나의 글씨가 점점 많아졌다. `이 부분 더 쉽게 설명해줘.` `이 유형도 정리해줘.` `내일 수행평가 전에 보내줘.` 나는 그걸 부탁이라고 믿었다. 고3 첫 모의고사 성적표가 붙은 날까지. 복도 게시판 앞에는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1등 이름 옆에 유나가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11등으로 밀려 있었다. 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었다. “운이 좋았어.” 그녀가 들고 있는 프린트 위에 낯익은 문장이 보였다. `오답은 틀린 답이 아니라 다음에 맞힐 답이다.` 내 오답노트 표지에 내가 적어둔 문장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오답노트를 덮었다. 문제보다 사람이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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