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의 청첩장에 축의금 대신 소장을 냈다
고소한밤 · 5화
전남편이 상간녀와의 청첩장을 보낸 날, 여자는 축의금 봉투 대신 손해배상 소장과 증거 USB를 챙긴다. 예식장 가장 환한 자리에서 두 사람의 거짓말이 법적 기록으로 바뀌는 5화 미니 완결.
# 1화. 청첩장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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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은 금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택배도 아니고 등기도 아니었다. 우편함 안에, 아주 정성스럽게 끼워져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지서 몇 장과 마트 전단지를 한 손에 들고 있다가, 마지막 봉투를 꺼내는 순간 손을 멈췄다.
두꺼운 아이보리색 봉투.
금박으로 눌러 찍은 이름.
그리고 그 아래, 내가 한때 지겹도록 보았던 세 글자.
강태오.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화도 바로 나지 않는다. 먼저 헛웃음이 난다더니, 정말 그랬다.
나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신발을 벗는 동안에도 봉투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치 이상한 벌레라도 잡은 사람처럼, 손끝으로만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다.
식탁 위에 봉투를 올려두었다.
가위로 뜯을까 하다가, 손으로 천천히 열었다.
안쪽에서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다. 청첩장에 향수를 뿌리는 사람도 있구나. 아니, 정확히는 그 여자가 그랬겠지.
하얀 카드가 나왔다.
나는 가장 먼저 날짜를 보았다.
다음 달 둘째 주 토요일.
장소는 강남의 한 호텔 예식장.
그리고 신랑 신부 이름.
신랑 강태오.
신부 윤서린.
아.
결국 그 이름이구나.
윤서린.
내가 결혼생활 마지막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었다.
"서린 씨는 그냥 회사 동료야."
"네가 예민하게 구니까 내가 더 숨기게 되는 거야."
"사람을 그렇게 의심하면 결혼생활 못 해, 지은아."
그때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증거는 있었다.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호텔 로비 CCTV 캡처. 새벽 두 시에 찍힌 차량 블랙박스 기록. 같은 출장지, 다른 객실 예약 내역. 카드 결제 문자. 내가 우연히 본 게 아니라, 그들이 너무 성의 없이 흘리고 다닌 흔적들.
그런데도 나는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이혼녀 딱지 쉽게 다는 거 아니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남자가 밖에서 좀 흔들릴 수도 있지,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 거야."
강태오가 말했다.
"네가 조용히 넘어가면 나도 정리할게."
나는 조용히 넘어갔다.
그리고 강태오는 나를 정리했다.
이혼 서류를 내밀던 날, 그는 끝까지 점잖았다.
"서로 더 망가지기 전에 정리하자."
서로.
그 말이 참 편리했다.
바람을 피운 건 그였고, 거짓말을 한 것도 그였고, 부부 공동명의로 사기로 했던 집 계약금을 자기 명의 통장으로 빼돌린 것도 그였는데.
이혼 사유는 끝내 성격 차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도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냥 도장을 찍었다.
사람이 너무 오래 참으면, 어느 순간 감정이 아니라 계산부터 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이미 계산을 시작한 뒤였다.
나는 청첩장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카드 맨 아래에는 작고 반듯한 글씨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이 하나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합니다.
귀한 걸음으로 축복해 주세요.
축복.
내가 그 단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나는 잠시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지은 씨."
낯선 척하는 목소리.
하지만 나는 바로 알았다. 윤서린이었다.
"청첩장 받으셨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윤서린은 내가 침묵하는 걸 즐기는 사람처럼, 조금 더 부드럽게 웃었다.
"보낼까 말까 고민했는데요. 그래도 태오 씨가 전 부인분께 예의는 지키는 게 맞지 않겠냐고 해서요."
전 부인분.
말끝을 살짝 올리는 방식이 참 그녀다웠다. 상냥한 척하면서 사람을 정확히 찌르는 말투.
나는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그래서요."
"네?"
"받았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면 받았어요."
"아, 네. 다행이네요."
다행.
그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목소리였다.
"혹시 오실 수 있으면 와주세요. 저희도 마음 편하게 시작하고 싶어서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세 시 십칠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햇빛이 아주 평온하게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어요?"
내가 묻자, 윤서린은 살짝 숨을 삼켰다.
"네?"
"마음 편하게 시작하고 싶다면서요. 뭐가 불편했냐고요."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안 가면 불편하고, 가서 웃어주면 편해져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나는 손톱으로 청첩장 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윤서린 씨."
처음으로 그녀 이름을 불렀다.
"네."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
"오실 수 있는 거죠?"
"가야죠."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보내셨는데."
통화가 끝난 뒤,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었다.
폴더 하나를 클릭했다.
폴더명은 아주 평범했다.
생활비_정산.
그 안에는 하위 폴더가 여러 개 있었다.
호텔. 카드내역. 블랙박스. 통화녹음. 부동산계약금. 윤서린.
나는 가장 아래 폴더를 열었다.
파일들이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혼 전 8개월, 이혼 전 5개월, 이혼 전 2개월. 그들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증명하는 것들.
강태오는 끝까지 몰랐다.
내가 조용히 도장을 찍은 이유가 용서라서가 아니라는 걸.
나는 그날 싸울 힘이 없어서 물러난 게 아니었다. 더 정확한 자리를 고르기 위해 물러난 것이었다.
법정은 조용하다.
예식장은 시끄럽다.
사람들은 조용한 곳에서 나온 판결보다, 시끄러운 곳에서 터진 소문을 더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소문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소문은 지나가고, 기록은 남는다.
나는 변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청첩장 받았습니다.
소장 접수 일정 앞당길 수 있을까요?
답장은 1분도 지나지 않아 왔다.
가능합니다.
다만 정말 예식 전에 진행하실 건가요?
나는 청첩장을 집어 들었다.
금박으로 찍힌 두 사람의 이름이 햇빛 아래 반짝였다. 참 예뻤다. 비싼 종이에 찍힌 거짓말은 늘 그럴듯해 보인다.
나는 답장을 썼다.
아니요.
예식 당일에 맞출게요.
잠시 뒤 변호사의 답장이 왔다.
전달 방식은요?
나는 이번엔 조금 웃었다.
식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흰 축의금 봉투가 몇 장 들어 있었다. 작년 회사 동료 결혼식에 가고 남은 것이었다.
나는 그중 가장 깨끗한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앞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펜을 들고 천천히 썼다.
강태오, 윤서린 귀하.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덧붙였다.
손해배상청구의 소.
축의금 봉투에 들어갈 것은 돈이 아니었다.
내 결혼을 망친 두 사람에게, 나는 아주 정중한 방식으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초대장에 적힌 대로.
귀한 걸음으로.
축복 대신, 소장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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