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해물들아, 이 누나가 포식자란다
심해라면 · 5화
과로로 쓰러진 수산물 MD가 심해 왕국의 인간 공주로 깨어난다. 먹잇감 취급받던 그녀는 거래표와 식재료 지식으로 문어 귀족들을 뒤집고, 심해의 유통권을 잡아먹는다.
# 하찮은 해물들아, 이 누나가 포식자란다
## 1화. 수조에 떨어진 날
눈을 떴더니 천장이 물결쳤다.
아니, 천장이 아니라 진짜 물이었다. 푸른 물결이 머리 위에서 출렁였고, 진주로 만든 샹들리에가 느리게 흔들렸다.
나는 방금 전까지 새벽 배송 수산물 발주표를 보고 있었다. 활문어 단가가 올랐고, 냉동 새우 재고가 꼬였고, 팀장은 “내일 아침까지 해결”이라는 말을 남기고 퇴근했다.
그리고 나는 책상에 엎어졌다.
그다음이 이거였다.
“공주님, 정신이 드십니까?”
문어처럼 생긴 남자가 침대 옆에서 다리를 공손히 접었다. 다리가 여덟 개였다. 정장 비슷한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문어였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 어디예요?”
“심해 왕국 아트란티아의 진주궁입니다.”
“제가 누구고요?”
“인간 공주 리아나님이십니다. 오늘 저녁 문어 왕자와 약혼식을 올리신 뒤, 전통에 따라 왕가의 축복으로 잡아먹히실 예정입니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문어는 여전히 문어였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잡아먹히실 예정이라고”
“그걸 그렇게 공손하게 말하면 덜 이상해져요?”
문어 신하는 당황한 듯 다리 하나를 꼬았다.
침대 옆 탁자에는 조개껍데기 문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집어 들었다. 직업병이었다. 계약서, 납품서, 단가표, 발주서. 종이만 보면 조건부터 확인하는 몸.
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간 공주 리아나는 문어 왕가와 혼인하며, 의식 종료 후 왕가의 번영을 위해 헌납된다.`
헌납.
나는 웃음이 나왔다.
“가격은요?”
“예?”
“사람 하나를 먹겠다면서 가격표도 없고, 원산지 표시도 없고, 계약 해지 조항도 없네.”
문어 신하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행히 다리는 두 개였다. 드레스는 무겁고 불편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은빛 드레스, 푸른 눈, 긴 검은 머리. 확실히 공주 같았다. 하지만 눈빛은 내 것이었다. 새벽 세 시까지 단가 협상하다가 거래처를 울려본 수산물 MD의 눈.
문어 신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주님, 약혼식 준비를”
“왕자님 어디 있어요?”
“대연회장에 계십니다.”
“좋아요. 안내해요.”
“잡아먹히실 준비를 하시려는 겁니까?”
나는 조개껍데기 계약서를 접어 들었다.
“아니요.”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누구를 먹는지 정하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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