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월급으로 첫사랑 병원비를 냈다
월급명세 · 5화
월급날마다 비어 가던 계좌의 끝에는 낯선 병원 영수증이 있었다. 남편은 첫사랑의 보호자 칸에 자기 이름을 적었고, 아내는 생활비 내역서로 결혼의 지출처를 다시 쓴다.
# 1화. 월급이 사라진 계좌
월급날 저녁, 통장 잔액은 이미 반으로 줄어 있었다.
나는 은행 앱을 다시 새로고침했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급여 입금 3,420,000원. 카드대금 선결제 1,860,000원. 자동이체 예정액을 빼기도 전에 계좌는 이미 얇아져 있었다.
남편 기준은 소파에 누워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었다.
"이번 달 카드값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
기준은 리모컨 소리를 줄이지 않은 채 말했다.
"대출 이자 올랐다며. 관리비도 많이 나왔고."
"카드 선결제인데?"
"아, 내가 좀 썼어. 회사 일로."
그는 늘 회사 일이라고 했다. 회사 회식, 회사 경조사, 회사 선물. 결혼 6년 동안 나는 그 회사 사람들의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카드사 앱을 열었다.
승인처는 병원이었다.
성모여성병원.
금액은 1,860,000원.
날짜는 어제 오후 4시 12분.
기준은 어제 야근한다고 했다.
"어제 병원 갔어?"
리모컨 소리가 멈췄다.
"무슨 병원?"
"성모여성병원."
기준은 잠깐 나를 봤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회사 동료가 급해서. 내가 대신 결제했어. 바로 받을 거야."
"누구."
"말해도 몰라."
"그러니까 이름."
그는 짜증을 냈다.
"사람이 급하다는데 돈부터 따져?"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결혼 초반이라면 사과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계산적이었나, 아픈 사람 앞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나.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미안하지 않았다.
그 병원 이름 때문이었다.
성모여성병원.
기준의 첫사랑 윤채린이 간호사로 일하던 곳. 아니, 몇 년 전에는 그랬다고 들었다. 시댁 모임에서 아주 우연히, 시누이가 술에 취해 흘린 이름이었다.
채린 언니는 아직 결혼 안 했대?
그때 기준은 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다음 날 반차를 냈다.
병원 수납창구 앞에 서자 심장이 이상하게 차분했다. 나는 내 카드 승인 내역을 보여 주고 영수증 재발급을 요청했다. 직원은 본인 확인을 거친 뒤 종이를 건넸다.
영수증에는 환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채린.
보호자란에는 남편의 이름이 있었다.
박기준.
나는 영수증을 접지 않았다. 접으면 이 일이 작아질 것 같았다.
수납창구 옆 대기 의자에서 기준을 봤다. 그는 커피 두 잔을 들고 병실 쪽 복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회사에 있다던 시간이었다.
그 뒤로 흰 환자복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윤채린은 사진보다 더 말랐고, 더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 결혼생활 어딘가에 오래 숨어 있던 얼굴.
기준은 그녀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 손길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는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찰칵.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내 월급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제 첫 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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