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장례식장에서 그의 두 번째 아내가 조문객을 맞았다
검은봉투 · 5화
남편의 부고를 단체방에서 본 아내가 빈소에 도착하자, 다른 여자가 상주석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두 집 살림, 위조 서명, 보험금까지 장례식장에서 전부 기록으로 뒤집는 5화 미니 완결.
# 1화. 상주석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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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부고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봤다.
처음엔 누가 잘못 올린 줄 알았다. 검은 리본이 달린 사진, 장례식장 주소, 발인 시간. 그리고 그 아래 적힌 이름.
문태준.
내 남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법적으로 아직 내 남편인 남자.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 별거는 했다. 그가 집을 나간 지 8개월이 지났고, 생활비가 끊긴 지는 5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적은 없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단체방에 뜬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상주 박하린.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슬픔 때문은 아니었다. 슬픔은 이미 오래전에 마른 감정이었다. 남은 건 이상하게 선명한 기분이었다.
마치 누군가 내 이름이 적힌 서류 위에 검은 펜으로 줄을 그은 걸 본 것 같았다.
나는 옷장에서 검은 원피스를 꺼냈다. 상복을 입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확인할 자격이 있어서였다.
장례식장은 강남의 오래된 대학병원 지하 1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흰 국화 냄새가 먼저 밀려왔다. 복도 끝 빈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고, 누군가는 조의금 봉투에 이름을 적었다.
나는 빈소 입구에 멈춰 섰다.
영정 사진 속 문태준은 웃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얼굴보다 훨씬 말끔했다. 아마 회사 프로필 사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 아래, 상주석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상복. 흰 리본. 손목에는 상주 완장.
그 여자는 조문객이 올 때마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처럼.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여자는 나를 보고도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나도 그 여자를 처음 봤으니까.
조문객들이 빠진 짧은 틈, 내가 그녀 앞에 섰다.
"박하린 씨?"
여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네. 그런데…"
"정은서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여자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그 반응 하나로 충분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이름은 알고 있었다.
나는 조문록을 집어 들었다. 맨 아래 빈칸에 이름을 썼다.
정은서.
그리고 관계란에 한 글자씩 눌러 적었다.
배우자.
옆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박하린의 손이 상주석 위에서 떨렸다.
"여긴 왜 오셨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빈소 안에서는 충분히 크게 들렸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편 장례식장이니까요."
"무슨 소리예요. 태준 씨는 저랑"
"혼인신고 했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가방에서 주민등록등본이 아니라, 더 간단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가족관계증명서. 어제 동사무소에서 뽑아 둔 것처럼 구김 하나 없는 종이였다.
배우자란에는 아직 내 이름이 있었다.
정은서.
문태준의 법적 아내.
박하린은 서류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시선은 어쩔 수 없이 내려갔다.
그때 빈소 안쪽에서 시어머니가 뛰어나왔다.
"너… 네가 여길 왜 와!"
나는 고개를 돌렸다.
8개월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나를 며느리라 부르던 때보다, 남의 집 여자라 부르던 때가 더 많았던 사람.
시어머니는 내 손에 든 서류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히 나가. 오늘 같은 날 소란 피우지 말고."
나는 웃었다.
"소란은 제가 만든 게 아닌데요."
나는 상주석의 박하린을 한 번, 시어머니를 한 번 보았다.
"제 남편 장례식장에서, 다른 여자가 아내 행세를 하고 있네요."
빈소 안 공기가 멈췄다.
사람들이 눈을 피하는 척하면서 귀를 세웠다.
시어머니는 내 팔을 잡으려 했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손대지 마세요. 여기 CCTV 있죠?"
시어머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박하린은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태준 씨가… 이혼했다고 했어요."
거짓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에게는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조의금 접수대 쪽을 바라보았다. 장부가 있었다. 봉투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 돈을 받는 사람은 박하린이었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확인하면 되겠네요."
"뭘요?"
"누가 아내인지."
나는 112가 아니라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영정 사진 속 문태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나는 낮게 말했다.
"선생님, 저 장례식장입니다. 네. 남편이 죽었는데요."
시어머니가 다시 내 팔을 잡으려 했다.
나는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상주가 제가 아니네요."
스피커 너머 변호사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의금 장부부터 확보하세요."
그 한마디에, 박하린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 장례식에는 죽은 사람보다 숨겨진 게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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