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첫사랑 딸에게 내 방을 빼앗겼다
비상구 · 5화
아버지가 첫사랑의 딸을 집으로 데려온 날, 친딸은 자기 방과 생일과 가족 사진 속 자리까지 빼앗긴다. 울지 않고 가족 단톡방을 나간 뒤, 그녀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손절을 시작한다.
# 아빠의 첫사랑 딸에게 내 방을 빼앗겼다
## 1화. 가족 단톡방을 나갔다
내 방 문패가 사라진 건 월요일 저녁이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방문에는 낡은 나무 문패가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직접 칠해준 것. 삐뚤빼뚤한 글씨로 `서하 방`이라고 적힌, 우리 집에서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던 가장 작은 물건.
그게 사라졌다.
문 앞에는 새 문패가 붙어 있었다. 흰색 아크릴 판에 금색 스티커로 눌러 붙인 이름.
`유민 방`.
나는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났다. 아빠의 웃음. 내가 고3 때 이후 거의 듣지 못했던, 목 끝까지 풀어진 웃음이었다.
“서하 왔어?”
아빠는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아빠 옆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아니, 낯선 건 아니었다. 사진으로는 이미 봤다. 아빠가 술에 취하면 가끔 꺼내 보던 오래된 사진 속 여자. 아빠의 첫사랑.
그리고 그 여자 옆에 선 아이가 내 방 문패의 새 주인이었다.
“인사해. 유민이야.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낼 거야.”
한동안.
그 말은 이상하게 넓었다. 내 방문보다 넓고, 내 책상보다 넓고, 내가 겨우 지켜온 집 안의 자리보다 넓었다.
“제 방은요?”
내가 묻자 아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서하야, 네가 언니잖아. 유민이는 아직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너는 거실 옆 작은방 써도 되지?”
작은방.
작은방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창고처럼 쓰던 방이었다. 계절 지난 이불과 고장 난 선풍기, 엄마 옷을 버리지 못해 담아둔 상자가 있는 곳.
나는 다시 방문을 보았다. 내 책상 위에는 유민의 화장품 파우치가 놓여 있었다. 내 침대 위에는 분홍색 담요가 깔려 있었다. 내 책꽂이 한 칸은 비워져 있었다.
“내 물건은요?”
“아, 큰 상자에 담아놨어. 내일 같이 정리하자.”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유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불편하게 해서.”
너무 정확한 말이었다. 불편했다. 그런데 그 말을 먼저 해버리면, 나는 더 이상 불편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빠: 오늘부터 유민이도 가족처럼 지내기로 했다. 다들 잘 챙겨줘.`
곧바로 큰아빠가 엄지 이모티콘을 보냈다. 고모는 “서하가 언니니까 잘하겠네”라고 썼다. 사촌 언니는 “새 가족 축하”라고 했다.
새 가족.
나는 휴대폰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채팅방 이름은 아직 `우리 가족`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었다. 엄마, 아빠, 오빠, 나.
그 사진 속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이제 내 방 안에 있었다.
나는 엄마 상자가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바닥에는 내 물건이 든 큰 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맨 위에 엄마가 준 문패가 뒤집혀 있었다.
손끝으로 먼지를 털었다.
서하 방.
나는 그걸 품에 안고 단톡방을 열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서른두 개였다. 전부 유민을 위한 말이었다.
`서하야, 네가 먼저 손 내밀어.`
`엄마 없는 애끼리 마음 맞겠네.`
`아빠도 이제 좀 행복해야지.`
내 행복을 묻는 말은 없었다.
나는 단톡방 정보창을 열었다.
나가기.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눌렀다.
알림이 사라졌다. 집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내 휴대폰만큼은 조용해졌다.
손절은 생각보다 작은 소리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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