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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 찍는 날, 전남편이 울었다

도장깨기 · 5화

합의 이혼 마지막 날, 남편은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아내가 꺼낸 재산분할표와 녹음 파일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버린 결혼의 가격을 마주한다.

# 합의서 찍는 날, 전남편이 울었다 ## 1화. 합의 이혼 10분 전 가정법원 맞은편 카페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합의서를 펼쳤다. 종이 두 장. 이름 두 개. 도장을 찍으면 6년짜리 결혼이 끝나는 데 필요한 건 생각보다 적었다. 남편, 아니 곧 전남편이 될 사람은 약속 시간보다 17분 늦게 도착했다. “미안, 차가 막혀서.” 민재는 늘 그런 식이었다. 회사 회식에도, 내 생일에도, 엄마 병원에도 늦었다. 그리고 늦은 이유는 늘 있었다. 차가 막혀서,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네가 이해해야 해서. 그는 내 앞에 앉으며 웃었다. “우리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도장 찍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합의 이혼이잖아. 좋게 끝내자고.” 좋게. 나는 가방에서 두꺼운 파일을 꺼냈다. 민재의 웃음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건 뭐야?” “좋게 끝내기 위한 정리.” 파일 첫 장에는 재산분할표가 있었다. 집 보증금, 혼인 기간 중 늘어난 예금, 내 명의로 빠져나간 생활비, 민재가 자기 어머니에게 보낸 돈, 내가 갚은 카드값. 민재는 표를 보자마자 눈썹을 찌푸렸다. “이런 것까지 적었어?” “응. 이런 것까지 결혼이었으니까.” 그는 합의서를 잡아당겼다. “처음 얘기랑 다르잖아. 그냥 각자 가져갈 거 가져가기로 했잖아.” “그때는 내가 네 말을 믿었을 때고.” 나는 두 번째 장을 넘겼다. 녹취록 요약본이었다. 민재가 친구에게 웃으며 말한 내용. `집은 내 명의 아니니까 별거 없어. 은채는 착해서 그냥 나갈 거야.` 민재의 얼굴에서 색이 빠졌다. “그걸 녹음했어?” “네가 내 앞에서 한 말은 아니야. 그런데 네가 내 인생을 계산했으면 나도 계산해야지.” 그는 급히 물을 마셨다. 손끝이 컵에 부딪혀 작은 소리가 났다. “은채야, 우리 부부였잖아.” 그 말이 우스웠다. 부부였다는 말은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그의 입에서 나왔다. 결혼생활 동안 나는 대출 공동 상환자였고, 시댁 행사 담당자였고, 냉장고를 채우는 사람이었다. 부부라는 단어는 늘 내가 필요할 때만 사라졌다가, 그가 불리할 때만 돌아왔다. 나는 도장을 꺼냈다. “맞아. 부부였으니까 나눌 것도 있어.” 민재는 합의서를 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재산분할표의 마지막 줄에 멈춰 있었다. `청구 금액: 48,300,000원` 법원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처음으로 민재가 늦지 않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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