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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성녀는 오늘도 기도하는 척한다

서린하 · 70화

신성력 0의 생계형 사기꾼 리네트가 신탁이 고른 성녀로 지목된다. 들키면 화형인 자리에서 눈치와 화술로 기적을 연기하는데, 구한 사람들 곁에서 가짜 기적이 자꾸 진짜가 된다.

"이 성수로 말씀드리자면, 축일 자정에 대성당 지하 샘에서만 길어 올린 물이랍니다." 거짓말이다. 골목 공동 우물물에 소금 반 줌. "어머, 그럼 이걸 마시면 정말 관절이……." "마시는 물이 아니라 바르는 물입니다, 부인. 은총은 피부로 스미는 법이지요." 방금 지어냈다. 마신다고 하면 배탈 났을 때 도망갈 구석이 없다. 바른다고 하면 효험이 없어도 정성 탓이 된다. 거짓말에도 뼈대라는 게 있다. 부인이 병을 햇빛에 비춰 보았다. 소금물이 축일 아침 햇살을 받아 제법 성스럽게 반짝였다. 날씨까지 내 편인 날이 있다. "무릎에 바르고 주무세요.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계단 내려가실 때 아실 겁니다." 사흘. 이 장사의 숫자다. 하루면 의심하고 이레면 잊는다. 사흘째쯤 무릎이 덜 아픈 아침이 하나는 걸리게 마련이고, 사람은 그 하루를 기적이라 부른다. 금실 수 놓인 장갑이 은화 세 닢을 내밀었다. 나는 두 닢만 받았다. "신께서 부인을 먼저 알아보셨나 봅니다. 오늘은 반값만 받으라시네요." 부인이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뒤에 줄이 생겼다. 한 닢을 돌려주면 사람들은 장사꾼이 아니라 은인을 본 얼굴이 되고, 그 얼굴이 줄을 세운다. 눈이 침침하다는 노신사에게는 병을 눈가에 대고 기도문을 외게 했다. 침침한 눈은 소금물이 아니라 세월 탓이지만, 기도하는 사흘 동안은 손주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면 눈이 아니라 마음이 밝아졌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만 팔았다. 잘하면 오늘 안에 고아원 지붕 고칠 값이 나온다. 비 새는 방에서 애들 아홉이 겨울을 나게 둘 수는 없다. 다음 손님이 문제였다. 물어 뜯긴 손등, 잿물에 삭은 소매. 빨래삯으로 사는 사람이 병째 움켜쥐고 있었다. "아이가 열이 안 내려서요." "이건 효험이 없습니다." 여자 말보다 내 입이 먼저 움직였다. 줄 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방금까지 은총이 스민다던 물이었다. 알 게 뭐야. 나는 병을 도로 뺏고 광장 동쪽 끝을 가리켰다. "열병에는 물의 은총보다 흙의 은총이 먼저 닿는 법입니다. 저기 연기 나는 집 보이시지요. 약초상 노인께 버드나무 껍질을 달라 하세요. 성수 값이면 사흘치는 줍니다." 방금 그 교리도 지어냈다. 물의 은총, 흙의 은총. 그럴듯하면 됐다. 여자가 어리둥절한 채 물러갔다. 바보 같은 짓인 건 안다. 그래도 그 병값으로 산 빵은 목에 걸린다. 걸려서 안 넘어간다. 나는 그런 체질로 태어났고, 체질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다. 호루라기가 울었다. 경비대. 셋. 동쪽 입구. 나는 좌판보를 통째로 말아 안고 반대쪽으로 걸었다. 뛰면 죄가 되고 걸으면 행인이 된다. 품 안에서 은화가 절그럭거리지 않게 팔꿈치로 눌렀다.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뛰었다. 첫 골목은 막혔고, 둘째 골목은 생선 수레가 자빠져 있었고, 셋째 골목은. 셋째 골목은 대성당 뒷마당으로 통했다. 향 연기가 벽처럼 서 있었다. 부딪힌 얼굴에 향내가 훅 끼쳤다. 성가 소리가 등 뒤의 호루라기를 지웠고, 흰 예복이 마당 가득 도열했고, 단 위에 노인 다섯이 나란했다. 다섯 기둥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은 일 년에 하루뿐이라던가. 성녀 발표일. 하필.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경비대 발소리. 앞에는 의식. 옆은 담장. 담장 밑에 헌금궤. 헌금궤를 밟고 오르면, 아니, 그건 잡히면 죄목이 하나 더 는다. 도망 경로를 셋까지 세었을 때, 단 위의 빛이 움직였다. 성가가 반 소절에서 끊겼다. 등불이라기엔 심지가 없고 햇살이라기엔 방향이 틀린 빛이었다. 단 위에 떠 있던 그것이 천천히, 수백 개의 정수리 위를 지나며 흰 예복을 차례로 술렁이게 하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나는 슬쩍 왼쪽으로 한 걸음 비켰다. 빛도 왼쪽으로 한 걸음 왔다. 오른쪽으로 반 걸음. 빛도 반 걸음. 이봐. 저리 가. 나 지금 바쁘거든. 빛은 가지 않았다. 대신 내 발치에 고였다. 물처럼. 주인 찾은 개처럼. 제일 늙은 대신관이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지팡이 구르는 소리가 그 넓은 마당에서 제일 큰 소리였다. "빛의 그릇이…… 오셨다." 마당이 통째로 무릎 꿇었다. 흰 예복 수백 벌이 바람 맞은 밀밭처럼 쓰러졌다. 서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소금물 병 마흔 개를 보자기째 껴안은 채로. 아니요.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 방금까지 저 앞에서 이 소금물을 축복이라고 팔던 사람이에요.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나가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았다.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신탁 부정이고, 신탁을 부정한 자가 어디로 가는지는 광장 사람이면 다 안다. 불 얘기다. 어느 사제는 이마를 땅에 대고 울었다. 어느 사제는 나를 훔쳐보며 입을 벌렸다. 맨발에 장사꾼 치마를 두른 성녀라니, 저들 눈에도 앞뒤가 안 맞을 텐데, 누구 하나 아니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단 위의 다섯 기둥도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넷은 떨고 있었다. 다섯째는 떨지 않았다. 무릎은 꿇되 고개는 덜 숙인 그 노인의 눈이, 절하는 각도의 틈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진짜인지 눈속임인지 가려내려는 눈은 광장에서 하도 겪어 모를 수가 없다. 문제는 저울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살길은 하나였다. 나는 보자기를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고,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모으고, 십 년 사기 인생에서 가장 경건한 목소리를 꺼냈다. "……빛 안에서." 성당 앞에서 십 년을 장사하며 어깨너머로 주운 말이 하필 그거 하나라 다행이었다. 일단 끄덕여. 밤에 튀면 돼. 가마는 안에서 잠기지 않았다. 확인은 끝났다. 맞은편에는 늙은 사제가 탔다. 성녀께 예법을 가르치는 소임을 사십 년 맡았다 했다. 신전까지 가는 동안 기도 예법부터 익히자며 노인이 기도 자세를 지어 보였다. "기도의 개시구는 이미 알고 계시더군요. 과연." 과연 같은 소리. 어깨너머로 주운 말이라고는 차마 못 하고, 나는 눈을 내리깐 채 웃기만 했다. 침묵과 미소는 밑천이 안 드는 대답이다. "종결은 이렇게 맺으십니다. 그리 되기를." "그리 되기를." "손은 이렇게. 왼 엄지가 위로 오게 꼬아 잡으십니다." 노인이 시범을 보였다. 나도 따라 모았다. 십 년 동안 물건 세고 거스름 내주던 버릇은 제멋대로 익숙한 쪽을 골랐다. 오른 엄지가 위로 갔다. 노인의 눈이 내 손끝에 멎었다. 시선이 한곳에 오래 머물수록 공기는 무거워진다. 가마 바퀴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하나. 둘. 셋을 세기 전에 입을 열어야 한다. 셋을 넘기면 침묵이 대답이 된다. "성서에 이르길, 빛은 그릇을 가리지 않는다 하였지요." 노인이 눈을 들었다. "손의 모양도 그릇의 흠집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빛은 흠집까지 쓰다듬으실 텐데요." 뒷문장은 방금 지어냈다. 앞문장도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른다. 성서가 두꺼운 게 내 밑천이다. 다들 두껍다는 이유로 안 읽으니까. 노인은 오래 말이 없었다. 들켰나. 가마 문, 안 잠김. 오른쪽으로 구르면 시장통. 시장통에서 왼쪽 셋째 골목, 가죽집 뒷문. 노인이 울고 있었다. "소인은 평생 손이 굽어, 예법대로 꼬지 못했습니다." 굽은 손가락이 펴 보이려다 만 모양 그대로 떨렸다. "신관들 앞에서는 소매에 감추고 살았습니다. 그게 부끄러워, 예법을 가르치는 몸으로 정작 성녀님 모실 자격은 없다 여겼는데." 굽은 손가락이 내 손등에 조심스레 얹혔다. 종이처럼 가볍고 겨울처럼 차가웠다. "흠집까지 쓰다듬으신다니. 사십 년 만에…… 오늘에야 발 뻗고 자겠습니다." 살자고 지어낸 말이었다. 광장에서 소금물 팔 때랑 똑같은 값싼 재주였다. 그런데 이 노인은 그 말로 살아났다. 사십 년을 소매 속에 감춰 산 것이 지금 소매 밖에, 내 살갗 위에 나와 있었다. 그 무게가 종이 한 장만큼도 안 되는데, 이상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위에 내 남은 손을 마저 얹고, 기도하는 척 눈을 감았다. 도망 경로는 조금 이따 짜기로 했다. 신전 정문 앞에 흰 예복이 두 줄로 도열해 있었다. 가마에서 내리는 나를 향해 수백 개의 고개가 일제히 숙여졌다. 딱 하나, 숙여지지 않은 고개가 있었다. 검은 제복이었다. 흰 마당에서 혼자 검었다. 사제들이 그 곁만 물길 갈라지듯 비켜 서 있었다. "수석 심문관님이십니다." 곁에 붙은 어린 시종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난달 남부에서 가짜 예언자를 잡아 화형대에 세운 분이라고. 가짜의 목소리는 세 마디면 아신다고. 그 예언자는 마지막까지 저주를 퍼부었는데 심문관님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으셨다고. 화형대. 그 세 글자에 어금니 안쪽이 시렸다. 광장에도 화형 구경을 다녀온 자들이 있었다. 재도 안 남는다고 했다. 냄새가 사흘을 간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빵을 씹고 있었다. 남 얘기는 원래 빵이랑 같이 잘도 넘어간다. 지금은 남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미소를 지켰다. 위기일수록 천천히. 우아하게. 겁먹은 건 성녀가 아니라 나니까, 나만 조용하면 된다. 남자가 다가왔다. 검은 장화 소리가 규칙적으로 가까워지는 동안 마당의 숨소리가 하나씩 죽었다. 예는 없었다. 대신 눈이 왔다. 저런 눈을 안다. 좌판을 뒤집기 직전의 경비대장 눈. 패를 다 보고 나서야 움직이는 자의 눈. 그 눈이 내 얼굴에서 손끝으로 내려갔다. 반대로 꼬인 엄지. 이어 소금물 마흔 병이 든 보자기로,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노사제에게로 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아주 잠깐, 처음 보는 표정이 스쳤다. 패가 안 읽히는 자의 표정. 시종이 숨을 삼켰다. 심문관이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다고 들었는데, 남자의 입이 열렸다. "성녀 검증은 심문청이 맡습니다."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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