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 드립니다
흰여백 · 81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온라인 흔적을 지워 주는 여자에게 자신을 전부 지워 달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흔적을 지울수록 지우면 안 되는 한 사람의 진실이 드러난다.
"다 지워집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두 번 묻는다. 정말 다 지워지느냐고 한 번 묻고, 그러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또 한 번 묻는다. 앞의 질문에는 다 지워진다고 대답하고 뒤의 질문에는 두 달쯤 걸린다고 대답한다.
둘 다 정확하지 않다.
앞에 앉은 여자는 예순쯤 됐고 손등에 검버섯이 폈고 아까부터 손수건을 접었다 폈다 하고 있다. 접을 때마다 같은 자리가 접혀서 그 선이 하얗게 닳았다. 아들이 넉 달 전에 죽었고 스물아홉이었다.
에어컨이 돌고 있는데 여자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더워서 나는 땀은 관자놀이에 맺히고, 이 땀은 이마 한가운데에 맺힌다.
"…아들 얼굴이 아직 떠요."
여자가 그렇게 말한다.
"검색하면 떠요. 이름 치면 나와요."
"그렇습니다."
"…내가 그걸 매일 봐요."
여자가 손수건을 무릎에 놓는다. 놓고 다시 집는다.
"안 보려고 하는데 봐요."
나는 노트를 편다. 표지가 없는 노트고 상호도 이름도 안 적혀 있는데, 그건 내가 간판을 안 달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간판을 달면 이상해진다. 지워 준다고 써 붙이는 순간 지우고 싶은 게 있는 사람만 들어오는 문이 되고, 그 문으로 들어오는 걸 남이 본다.
"선생님."
"…예."
"순서가 있습니다."
여자가 나를 본다.
"먼저 원본을 지웁니다. 계정과 게시물이요. 그다음에 그 원본을 복사해 간 데를 찾습니다. 그게 미러입니다. 미러를 지우고 나서 검색을 걷어 냅니다."
"…"
"거꾸로 하면 안 됩니다. 검색부터 걷으면 사흘 만에 도로 뜹니다. 원본이 살아 있으니까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들어서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을 하고 있으니까 끄덕이는 것이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
알아들으라고 하는 설명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알려 주는 설명이다. 넉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한 사람 앞에서 순서를 말하면, 그 사람은 순서를 기억 못 해도 순서가 있다는 것은 기억한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아들 이름과 생년월일, 쓰던 계정 여섯 개, 그중에 비밀번호를 아는 것이 둘에 모르는 것이 넷, 사망 사실 증명 서류, 유족 관계 증명, 위임장 두 장.
위임장을 쓰는 데 여자 손이 떨려서 두 번째 장은 글씨가 커졌다. 나는 그걸 안 지적한다. 큰 글씨도 접수는 된다.
서류를 다 받고 나서 여자가 묻는다.
"…얼마예요."
"백이십입니다. 착수금 오십, 끝나고 칠십."
"…"
"많이 비쌉니까."
여자가 아무 말도 안 한다. 손수건이 무릎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고, 주우려고 몸을 굽히는데 허리가 잘 안 굽혀져서 내가 먼저 주워 준다. 축축했다.
"…아니에요."
여자가 그걸 받는다.
"비싸도 해야지요."
나는 그 말을 안 받는다. 여기서 뭐라고 위로를 하면 그 위로까지 청구서에 들어간 것처럼 들린다. 나는 그걸 참는 데 다섯 해가 걸렸다.
대신 다른 말을 한다.
"지우는 건 며칠이면 됩니다. 두 달은 검색에서 걷히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중간에 두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원본 접수가 다 끝났을 때, 두 번째는 검색까지 걷혔을 때요."
"…예."
"그때까지는 검색하지 마십시오."
여자가 나를 본다.
"…왜요."
"지우는 중에 보시면 지워지는 걸 보시게 됩니다. 그게 더 아픕니다."
여자가 그 말을 한참 듣는다.
듣고 나서 처음으로 눈이 붉어진다. 한 시간 반 동안 안 울다가 그 말에 운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아들 얘기를 할 때 안 울고 절차 얘기를 할 때 우는데, 이건 한 번도 안 틀렸다. 사람은 슬픔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고, 슬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남이 말해 줄 때 무너진다.
여자가 가고 나서 목록을 만든다.
노트를 펴고 자를 대지 않고 세로줄을 두 개 긋는다. 줄이 조금 휜다. 왼쪽부터 지움, 못 지움, 안 지움.
**지움**: 개인 블로그 하나, 사진 계정 둘, 게시판 글 스물셋, 중고 거래 계정 하나, 배달 앱 리뷰 열넷.
**못 지움**: 친구들이 올린 사진. 남이 찍어서 남이 올린 것은 남의 것이라 내가 못 건드린다. 요청은 넣을 수 있는데 요청은 부탁이지 권리가 아니다. 그리고 부고 기사 하나. 기사는 안 지워진다.
**안 지움**: 비어 있다.
세 번째 칸은 늘 비어 있다. 이 칸은 기술이 못 하는 것을 적는 데가 아니라 내가 안 하기로 정한 것을 적는 데인데, 나는 여태 아무것도 안 정했다.
정할 일이 없었다. 지워 달라고 하면 지운다. 그게 이 일이다.
노트를 덮는다. 표지가 손바닥에 서늘하다. 시계가 아홉 시 사십 분을 지나가고 있다.
이 사무실은 방이 둘인 오피스텔이고 하나는 일하는 방이고 하나는 자는 방이다. 두 방 사이에 문이 있는데 나는 그 문을 안 닫는다. 닫으면 여기가 집이 되고, 집이 되면 일이 집으로 들어온다.
열어 두면 전부 사무실이다. 그게 낫다.
벨이 울린 것은 열 시 십오 분이다.
예약이 없다. 나는 예약 없는 손님을 안 받는다. 이 일은 대개 밤에 결심하고 낮에 물러서기 때문에, 밤에 온 사람은 아침이면 안 왔던 걸로 하고 싶어 한다.
모니터를 본다. 화면이 흑백이라 옷 색이 안 나오는데 어두운 옷이고, 서른 중반쯤이고, 손에 아무것도 안 들었다. 가방도 서류도 없다. 이 일을 찾아오는 사람은 대개 뭘 들고 온다.
인터폰을 켠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뇨."
"예약제입니다. 내일 낮에 다시 오시면—"
"지금 하셔야 됩니다."
목소리가 낮고 짧다. 급한 사람 목소리가 아니다. 급한 사람은 말이 길어진다.
나는 잠깐 화면을 본다. 이 사람은 카메라를 안 본다. 문을 보고 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건 나중에요."
문을 연다.
여는 이유를 나는 나중에 여러 번 생각하게 되는데, 그날 밤에는 이유가 하나였다. 이 사람이 카메라를 안 봤기 때문이다.
여기 오는 사람은 전부 카메라를 본다.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한다. 그게 이 일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이 없다.
들어와서 앉는다. 앉기까지 동작이 셋뿐이고 방을 안 둘러본다.
여기 오는 사람은 방을 둘러본다. 이런 일 하는 데는 어떻게 생겼나 보고, 벽에 뭐가 걸렸나 보고, 컴퓨터가 몇 대인가 본다. 그걸 봐야 자기가 맡길 만한 데인지 정한다고 여긴다.
이 사람은 나만 본다. 의자에 앉아서 등을 안 기대고, 무릎에 손을 얹고, 나를 본다.
앉으면서 팔을 걷었는데 왼쪽 팔뚝 안쪽에 오래된 자국이 하나 있다. 뭔가에 데인 자국 같다. 그리고 셔츠 깃이 한쪽만 눌려 있다. 잘 다린 옷을 오래 입고 다닌 사람이 아니라, 어디 기대서 오래 있다가 온 사람의 깃이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개 옷을 차려입고 온다. 지워 달라고 부탁하러 오는 사람은 자기가 부탁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사람은 그런 데 신경을 안 썼고, 나는 그걸 삼 초쯤 본다. 보고 나서 노트로 눈을 내린다.
"어디까지 지워 드리면 됩니까."
"지워 주십시오."
"…어떤 걸 지워 드릴까요."
"전부요."
나는 노트를 새 장으로 넘긴다.
"전부라는 게 어디까지인지 정해야 합니다. 본인 이름이 들어간 것만인지, 얼굴이 나온 것도인지, 남이 선생님을 언급한 것까지인지요. 셋이 값도 다르고 기간도 다르고 가능 범위도 다릅니다."
"전부."
같은 말이다. 억양도 같다.
"…선생님."
"예."
"제가 여쭙는 건 범위입니다. 전부라고만 하시면 견적을 못 냅니다."
"전부요."
또 같은 말이다.
이 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로 대화를 끝낸다. 나는 다섯 해 동안 여러 종류의 사람을 봤는데 이 방식은 처음 본다. 보통은 말을 바꿔 가면서 밀거나, 아니면 화를 낸다.
이 사람은 말을 안 바꾸고 화도 안 낸다. 바꿀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의 방식인데, 그런 사람은 대개 돈이 많거나 시간이 없다.
나는 아직 어느 쪽인지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범위를 정해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예."
"먼저 하나 여쭙겠습니다. 지우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
"안 말씀하셔도 됩니다. 다만 이유에 따라 방법이 달라집니다. 취업이나 결혼 때문이면 부정적인 것만 걷어 내면 되고, 스토킹이나 협박이면 위치가 드러나는 것부터 급하게 지웁니다. 순서가 다릅니다."
남자가 나를 본다.
한참 본다. 대답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 아니다. 대답을 안 하기로 이미 정하고, 내가 그걸 알아차리기를 기다리는 침묵이다.
"…셋 다 아닙니다."
그것만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는다. 셋 다 아님, 이라고 적는다.
"그러면 넷째가 있습니다."
"…"
"자기가 없어지고 싶은 경우입니다."
남자가 아무 말도 안 한다. 부정도 안 한다.
나는 펜을 놓는다.
"선생님."
"예."
"저는 사람은 안 지웁니다."
"…"
"기록만 지웁니다. 기록을 지운다고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건 제가 이 일 하면서 확인한 겁니다."
"압니다."
"…"
"안다고 하셨습니까."
"예."
남자가 처음으로 두 마디를 이어 붙인다.
"기록이 없어져도 사람은 남는다는 거, 압니다."
"…"
"그래도 기록은 없애 주십시오."
나는 그 말을 오래 듣는다. 물컵이 옆에 있는데 안 든다. 물을 마시면 말이 끊기고, 지금 끊으면 이 사람이 일어설 것 같다.
이 사람은 내가 하려던 설득을 미리 알고 왔다. 나는 이 자리에서 늘 그 말을 한다. 지운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지우고 나면 더 허전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 잘 생각하시라고.
그 말을 미리 막고 왔다.
"…알겠습니다."
"값은 어떻게 됩니까."
남자가 묻는다.
나는 범위를 모른다. 범위를 모르면 값을 못 낸다. 이 사람이 인터넷에 뭘 얼마나 남겼는지 나는 아직 하나도 안 봤다.
원래는 이렇게 말한다. 사흘 뒤에 조사 끝나면 견적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다른 말이 나온다.
"…선생님이 남긴 게 많으면 삼백까지 갑니다."
"예."
"적으면 백 아래일 수도 있습니다."
"예."
"그럼 사흘 뒤에—"
"삼백 드리겠습니다."
나는 펜을 놓친다. 책상에 떨어져서 한 바퀴 구르고 멈춘다. 딸깍 소리가 두 번 났다.
주우려다가 안 줍고 그냥 본다.
"…아직 조사도 안 했습니다."
"많이 나오면 더 드리겠습니다."
"…"
"선생님."
"예."
"값을 안 물으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남자가 나를 본다.
"물었는데요."
"…"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안 들으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한다.
남자가 아무 말도 안 한다.
내가 맞혔다는 뜻인지, 틀렸는데 정정할 가치가 없다는 뜻인지 나는 모른다. 아까 침묵하고 다른 침묵인 것 같은데, 다르다고 정할 근거가 없다. 사람 하나를 삼십 분 보고 침묵을 분류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내 분류를 본다.
그래서 나는 정하지 않고 둔다.
정하지 않고 두는 게 오늘따라 잘 안 된다.
"성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내가 묻는다.
계약서를 써야 한다. 이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 위임장도 못 쓰고 요청서도 못 넣는다.
남자가 안 대답한다.
"…선생님. 이름이 없으면 일을 못 합니다. 제가 대신 요청을 넣으려면 위임장이 있어야 하고 위임장에는—"
"압니다."
"…"
"그러면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뭘 꺼낸다. 접힌 종이다. 펴서 책상에 놓는다.
신분증 사본이다. 이름이 있다.
나는 그걸 본다.
보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한다. 종이가 얇다. 여러 번 접혀서 접힌 자리가 하얗다. 오래 들고 다닌 종이다.
"…선생님."
"예."
"이거 본인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나는 그 종이를 다시 본다.
이름을 안다. 이 이름을 나는 안다.
다섯 해 전에 이 이름을 지웠다.
내가 이 일을 처음 맡은 게 다섯 해 전이고, 그때 지운 사람 이름이 여기 적혀 있고, 그 사람은 그때 죽었다.
작품에서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