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가 증언한다
검은찻잔 · 60화
독살당한 검시 명가의 정실 심려가 혼례 첫날로 회귀해, 시댁이 묻은 시신들의 진실을 법정에 올리는 고언 복수 미스터리.
# 死者가 증언한다 1화 「검은 손톱」
탕약은 달았다.
첩이 직접 달였다는 약을, 나는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셨다. 며칠째 손끝이 저렸지만 그게 약 때문인 줄은 몰랐다. 아니.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다. 알 수 있었다. 단지 알기를 그만둔 지 오래였을 뿐이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톱 밑이 검다.*
스무 해를 봉인해 둔 머릿속 한 페이지가, 죽어가는 순간에야 멋대로 펼쳐졌다. 《심씨험원록》 독사(毒死) 편. 부자(附子)를 과용한 시신은 입술과 손톱이 검게 가라앉고, 혀끝이 저리며, 목구멍이 가장 먼저 굳는다.
부자였다. 첩이 달인 약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천하의 심가 외동딸이, 시신을 만지는 천한 기술이라며 손에서 내려놓으라 했던 그 능력으로, 생의 마지막에 읽어낸 게 고작 제 사인(死因)이라니.
방문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승원. 내 남편. 내가 형부(刑部)의 문턱까지 업어다 앉힌 남자.
"부인이 또 헛것을 본다더냐. 약이나 더 올려라."
헛것. 그래, 나는 늘 헛것을 보는 여자였다.
부엌 칼자국의 각도가 이상하다고 말하면 헛것, 옆집 변사가 자살이 아니라고 말하면 헛것. 부인은 그런 걸 보면 안 됩니다, 어머님이 부끄러워하십니다, 친정이 욕을 먹습니다 그 말들에 나는 눈을 감는 법을 배웠다. 아주 잘 배웠다. 눈을 감은 채로 이렇게 죽을 만큼.
검은 시야 끝에서, 묻혀 있던 시신 하나가 떠올랐다.
지난가을, 시댁 별원(別院) 우물가에서 우연히 본 그 시신. 자살이라 했다. 목을 맸다고. 하지만 그 손톱 밑에도 흙이 너무 깊이 박혀 있었다. 매달린 자의 손이 아니었다. *끌려간 자의 손.*
내가 그 말을 입에 담은 다음 날, 약사발이 바뀌었다.
…아아. 이제야 보인다.
나를 죽인 건 부자가 아니다. 눈을 감기로 한 나 자신이다.
만약 한 번만 더
의식이 검은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끝없이, 아래로. 바닥에 누가 있는 것 같았다. 묻힌 자들이. 자살이라 적힌 채 흙 속에서 입을 다문 자들이. 그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검시관을 기다리듯이.
네가 우리를 읽어줘.
차가운 것이 손등에 닿았다. 물이 아니었다. 비단. 새 비단의 감촉.
눈을 떴다.
***
붉다. 천장이 붉다.
머리 위로 드리운 건 혼례용 홍개(紅蓋). 코끝에 닿는 건 신부 화장의 분 냄새와, 갓 마른 먹 냄새 혼서(婚書)의 먹 냄새.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나는 손을 들어 보았다. 손톱 밑이 깨끗했다. 검지 않았다. 따뜻했다. 핏기가 돌고, 마디가 부드럽고, 굳은살의 위치가 달랐다. 죽기 직전 내 손은 약사발을 쥐느라 검지 옆이 패어 있었다. 지금은 없다.
검시관의 버릇으로, 나는 내 몸부터 읽었다.
손등의 정맥 한 줄, 손목 안쪽의 흉터 하나. 그 흉터는 열일곱에 처음 시신을 만지다 칼에 베인 자국이다. 흐릿하다. 아직 덜 아문 흉터. 그러니 지금 나는 열일곱 무렵의 손을 하고 있다.
밖에서 시비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아씨, 신랑 측 행렬이 문 앞에 당도하셨습니다. 고 도련님께서"
고승원.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분 냄새, 먹 냄새, 새 비단. 사방에 붉은 천. 마당에서 들려오는 풍악과 발소리. 이건 기억이 아니다. 너무 선명하고, 너무 차갑다. 기억은 이렇게 손끝이 시리지 않는다.
혼례 첫날이었다.
내가 고승원에게 시집가던, 모든 것이 묻히기 전의 그 첫날.
시비가 내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아씨, 어디 편찮으십니까. 안색이……."
"아니다." 내 목소리가 낯설게 가라앉아 나왔다. 죽기 직전의 그 쉰 소리가 아니라, 아직 젊은 목소리. "괜찮다."
괜찮을 리가. 나는 방금 죽었다. 부자에 중독되어, 첩이 따라준 약을 마시고,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남편과 혼례를 올리려 앉아 있다.
회귀(回歸). 그런 말이 이 세상에 있던가. 망자(亡者)의 원(冤)이 너무 깊으면 강을 거슬러 돌아온다는, 검시 가문에 떠도는 옛 이야기. 할머니가 들려주던 괴담. 《험원록》 맨 끝장, 펴면 안 된다던 그 페이지.
나는 믿지 않았다. 시신은 거짓말하지 않지만, 산 자의 이야기는 늘 거짓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내 손이 증거다. 흉터가, 굳은살이, 핏기가 증언한다. 나는 돌아왔다.
***
기억이 쏟아졌다. 검시 기록을 들추듯, 한 장 한 장.
혼례 후 삼 년, 나는 친정의 검시 인맥과 자금을 고승원에게 통째로 대주었다. 형부의 노름빚을 진 관리를 구슬리고, 막힌 송사를 뚫어주고, 그가 풀지 못한 변사 사건의 진짜 사인을 밤마다 일러주었다. 고승원은 그걸 제 공으로 조정에 올렸고, 그렇게 출세했다.
세상은 그를 명판관이라 불렀다.
아무도 그 판결의 절반이 안채에 갇힌 여자의 머리에서 나온 줄 몰랐다. 나조차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부인의 공은 남편의 공이라고. 천한 오작(仵作)의 기술을 사대부 부인이 드러내면 가문 전체가 손가락질당한다고.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을 묶었다. 눈을 감았다.
그가 첩 유미를 들이던 날에도, 나는 웃으며 비단을 내어주었다. 어머님 시어머니 왕씨가 "격이 높은 첩이 천한 정실보다 낫다"고 손님들 앞에서 말했을 때도,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년 가을. 별원 우물가의 그 시신.
목을 맨 자살이라 했다. 고승원이 직접 그렇게 결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손톱 밑의 흙을 보았다. 목을 맨 자의 손에는 자기 목을 긁은 흔적이 남고, 흙은 끼지 않는다. 그 시신의 손톱엔 흙이 깊었다. 누군가에게 끌려가 묻히기 직전까지 땅을 움켜쥔 손.
나는 그걸 고승원에게 말했다. 단 한 번. "그건 자살이 아닙니다."
그가 나를 보던 눈을 기억한다. 처음으로 두려움이 섞인 눈.
그리고 며칠 뒤, 내 약사발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나를 죽인 건 첩의 질투가 아니었다. 남편의 무관심도 아니었다. 그건 곁다리였다. 진짜 이유는 내가 보지 말아야 할 시신을 봤기 때문이다. 그 시신을 자살로 묻은 누군가가, 내 입을 흙으로 막은 것이다.
나는 누구의 죄를 본 걸까. 그 우물 속에 묻힌 자는 누구였을까.
손끝이 다시 저렸다. 이번엔 독 때문이 아니라, 오래 묶여 있던 손이 풀리는 감각이었다.
***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를 향해. 익숙한 걸음.
문이 열리고, 고승원이 들어섰다.
사 년 전의 그는 아직 한미한 서생이었다. 관복 대신 낡은 청포(靑袍)를 입고, 출셋길도 첩도 아직 없는 얼굴. 나를 죽인 그 남자가, 아직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얼굴로 거기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부인은… 몸이 약하다 들었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집안일만 잘 챙겨주면 되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사 년 전 이 방에서, 똑같은 자리에서, 그가 내게 처음 건넸던 말. 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안도했었다. 다정한 사람이라고, 나를 아껴줄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 한마디를 믿고 삼 년을 갈아 넣었다.
집안일만 잘 챙겨주면 되오.
내 손을 묶은 첫 매듭이 바로 그 문장이었다.
나는 홍개 아래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신부는 혼례가 끝날 때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는 법이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붉은 천 사이로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가 멈칫했다. 신부가 이런 눈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한 얼굴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아주 오랜만에, 참지 않은 웃음이.
괜찮다, 고승원. 이번에도 집안일은 잘 챙겨주마. 네 출셋길도, 네 첩도, 네 시댁이 묻은 시신들까지. 아주 잘 챙겨서, 한 구씩 파내 주마.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은. 검시는 서두르는 게 아니다. 시신은 도망가지 않고, 죄는 흙 속에서 썩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지금 정했다.
이번 생에 나는, 약사발을 받아 드는 손이 되지 않는다. 약사발을 검시하는 손이 된다.
"……부인?" 고승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불편하시오?"
"아니요." 나는 홍개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신부의 규범을 깨는 행동에 시비가 숨을 들이켰다. 상관없었다.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서방님."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혼례를 마치면, 별원에 가보고 싶습니다."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손끝의 저림이 가라앉고, 그 자리에 차가운 확신이 들어찼다. "그 우물가에. ……아직, 아무것도 묻히지 않았을 때."
고승원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굳었다.
그는 모른다. 사 년 뒤 그 우물가에 무엇이 묻힐지. 그걸 본 아내가 어떻게 죽을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번엔, 눈을 감지 않는다.
*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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